잡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영화 1917 리뷰

정비완 2024. 11. 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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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에 개봉한 영화였는데, 봐야지 봐야지 미루다가 마침 기회가 되어서 보게 되었다. 

뭐 기생충이랑 그해 오스카 경쟁이 치열했다는데, 기생충이 받았던 해였지 아마.  

 

각설하고, 영화는 두 병사가 꽃으로 가득 찬 평원에서 한 병장의 전갈을 받고 잠을 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어나 새퀴야

 

잠에서 깨어난다는건 다시 살아난다, 혹은 계몽된다, 혹은 소명받았다 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을텐데, 

처음 이름을 불리는것은 블레이크다. 그는 에런 뭐시깽이 장군의 명령을 받고, 지도를 잘 보는 능력과 형이 그곳에 있다는 점에서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가장 빠르게 전달할 사람으로 적합한 사람으로 낙점되어 블레이크가 다시 한번 소명받게 된다.  

 

옆의 스코필드는.... 그냥 어...어어... 하다가 끌려들어가게 된 목격자같은 포지션이었던것이다. 

 

 

뭐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죽음의 구덩이와 독일군이 후퇴한 참호를 향해 무인지대를 건너가게 되고, 부비트랩에 걸려 죽을뻔했던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며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여기서 던지게 된다. 

 

시발 난 그냥 솜전투고 훈장이고 나발이고 살아서 돌아가는게 목적이라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미안하다고 변명을 하면서도, 마지막에 스코필드의 화를 돋구는 한마디를 던진다. 

하.... 이새퀴....

 

이미 존나 멀리 왔는데 어떻게 돌아가요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다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찌저찌 살다가 보니 이상한 일에 엮여서 나까지 위기에 빠지는 경우.

 

전부 그 사람 잘못이 아니란건 나도 당연히 알지만, 괜히 옆사람에 의해 난 100% 피해자인것처럼 생각이 되는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에서 스코필드도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을 이곳에 끌여들인 옆사람인 블레이크를 탓하고, 원망한다. 

근데 뭐 어쩌겠나, 이미 여까지 온거 돌아갈수도 없고, 옆의 이놈을 또 혼자 두기에도 뭐하니 그냥 플레어건이나 쏘라고 하는 걸로 대답하는 것이다. 

 

 

 

뭐 어찌저찌 해서 주민들이 도망간 집의 헛간에서 그들은 영국군에 의해 격추된 독일기를 목격하게 되고,
추락한 비행기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독일군 조종사를 살릴지 말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언쟁하게 된다. 

 
그 와중에 블레이크는 그 조종사의 칼에 맞아 사망하게 되고, 스코필드는 졸지에 블레이크의 임무 즉, 소명을 대신 실천하여야만 하는 운명에 빠진다. 

 

블레이크가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게 목적을 대신 수행하고, 어머니에게 블레이크의 죽음을 알리겠다고 '약속'함으로서,

목격자 혹은 비주도자에 불과했던 스코필드는 그 소명을 대신 수행하는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블레이크가 자신이 사제출신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것이다. 

블레이크(=신에 대한 믿음)가 사망한다는것은 길을 찾는 도중에 신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과정을 의미하는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군의 추격을 피해 꽃잎이 날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게 민간인들이 학살되어 시체가 떠내려온 강에서 나온 그는 좌절하고, 울음을 터뜨리지만, 가는 길을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반지의 제왕에서 모르도르로 향하는 길에서 프로도와 샘이 만난 물밑의 시체들과 너무 비슷하다.)

 

 

 

 

이제 전쟁을 막는 전령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역사적인 명장면이 나온다. 

이 방향인가....?

모두가 NO라고 할때 YES를 외치는 남자. 

시밤쾅

 

간닷...!

으아아아아~

 

직진도로에서 왜 혼자 좌회전하세요

???:아 보험청구할게요

 

 

이렇게 죽음의 문턱을 달려 공격을 멈추는 명령을 전달한 스코필드는, 생존자들중에서 블레이크의 형을 찾고, 블레이크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그의 임무는 완수된다. 

 

 

그리고 시작과 거의 동일한 구조로,비록 옆에 누워있는 블레이크는 이젠 없지만 그는 다시한번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금빛 동산의 나무 밑에서 또다른 소명을 기다리며.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주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목적의식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코필드는 솜 전투(1차세계대전에서 최고의 사상자가 난 전투중 하나)에도 참여했고, 그곳에서 무려 생존하고 훈장까지 받은 베테랑 군인이지만 전쟁에서 자신의 목적을 잃었고, 그저 돌아가기를 원하는 전쟁에 지친 병사이다. 

 

블레이크는 사제직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한, 초짜냄새가 진동하는 미숙한 병사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는 훈장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진것으로 보이며, 그 훈장을 받기에 완벽한 임무가 그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물론 형을 살려야 한다는 목적이 더 클테지만. 

 

 

그러나 블레이크가 사망하게 되자,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의 사명을 대신 부여받게 되는데, 그건 "그냥" 그가 그 당시에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뭐 거창한 이유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가 솜 전투에 나간 베테랑이기 때문(블레이크가 스코필드가 베테랑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와 갔다는 점에서 간접적 원인은 될 수 있으나, 직접적 원인이 될 수는 없다.)도 아니며, 

그저 블레이크가 불려간 자리에서 옆에 있는 병사였고,  블레이크가 사망할 당시에 옆에 있었던 병사였기 때문이다. 

 

스코필드는 그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을 찾아 임무를 끝내 완수해내지만, 사실 그는 

주어진 임무에 있어서 "그정도로" 열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부비트랩이 폭파된 독일군 참호에서 빠져나간 후 블레이크만 보내고 다시 부대로 복귀할 수도 있었고,

블레이크가 사망한 헛간에서 만난 연대의 자동차를 타고 돌아서 안전하게 갈 수도 있었으며,(늦어져서 십중팔구 임무는 실패했겠지만.)

중간에 만난 프랑스인 여자의 품에서 쉬었다가 갈 수도 있었으며, 

참호를 올라가 포화의 대상이 되는 죽음의 공간에서 달리지 않을수도 있었으며, 

대령이 공격명령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 그정도의 항명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다.

 

왜였을까? "그냥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닐까? 

 

 

 

 

이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묻는듯 하다. 너의 목적,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비록 그 임무 혹은 의무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애초에 우리 인생에서 그렇게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냐만)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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